「스텔라데이지호 중앙해난심판원 재결의 의미와 파장」
“과학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성찰의 장”
(사)한국해사포럼(회장 권오인)은 2026년 5월 22일 제64차 월례해사포럼을 개최하고 「스텔라데이지호 중앙해난심판원(이하 “중앙해심”) 재결의 의미와 파장」을 주제로 해운·조선·해사법·해양안전·선박공학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였다.
이번 포럼은 중앙해심의 재결을 둘러싼 찬반 논쟁의 장이 아니라, 스텔라데이지호 사고가 남긴 기술적·제도적 교훈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대한민국 해양안전과 해난조사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참석자들은 먼저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발생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선원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가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목표라는 데 뜻을 같이하였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는 단순한 침몰사고가 아닌 복합 시스템 사고
포럼에서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단순한 해난사고가 아닌 선박 구조, 해양환경, 운항관리, 검사제도, 비상대응체계, 사고조사제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스템 사고(System Accident)’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남대서양 심해지역으로 중앙해심의 재결의 근거와 동일하게 원인 규명은 현재까지 확보된 구조공학적 분석자료, 운항기록, 기상 및 해양자료, 생존선원의 진술, 국내외 연구기관의 연구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나 분석의 방법과 드러난 증거를 해석하는 데에 차이점이 확인되었다.
국제사회는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왜 시스템이 실패했는가”를 묻고 있다
발표자들은 영국 MAIB(Marine Accident Investigation Branch), 미국 NTSB(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일본 JTSB(Japan Transport Safety Board) 등 주요 선진국의 사고조사체계를 소개하며 국제사회의 해난조사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과거의 사고조사가 책임자 규명에 집중되었다면, 오늘날 선진국의 사고조사는 “누가 잘못했는가(Who failed)”보다 “왜 시스템이 실패했는가(Why the system failed)”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MV El Faro호 사례를 통해 대형 해난사고의 원인 규명은 단기간에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검증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도 소개되었다.
구조적 손상 가능성과 선체 안전성에 대한 연구성과 소개
포럼에서는 국내 전문기관과 연구진이 수행한 다양한 연구결과도 공유되었다.
발표자들은 일부 연구에서 지속적인 너울성 파도에 의한 비대칭 횡압력(asymmetric lateral pressure)과 반복적인 피로하중(fatigue loading)이 선체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시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선체 개조 이력, 선박 구조 특성, 운항환경, 선령 증가에 따른 피로 누적 가능성 등에 대한 연구도 소개되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연구결과가 특정 원인을 단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고 발생 메커니즘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분석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구조적 취약성과 관리 책임은 구분하여 검토할 필요
발표에서 사고 선박이 당시 규정에 맞게 개조되었고 선급검사를 통과했으며, 이후 8년간 국제협약에 따른 선급검사, 기국검사, 화주대행검사(Rightship), 브라질 항만국통제(PSC) 등에 모두 합격했고, 안전관리체제 심사도 정상적으로 수행한 사실을 적시하였다.
대한조선학회, KRISO, 모베나코리아, 한국해양대 공길영 교수팀 등 전문가들이 연구용역을 통해 내놓은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원인은 너울성 파도에 의한 비대칭 횡압력으로 선체 피로가 누적돼 2번 화물창 좌현 외판에 구조적인 손상에 기인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공길영 교수팀은 현재 선박과 비교해 스텔라데이지호의 평형수탱크가 2배 이상 크고 건현도 높아 비대칭 횡압력에 취약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스텔라데이지호의 평형수탱크의 구조적 취약성이 지적됐지만 당시 규정은 충족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선급, 정부, 선사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당시 규정의 미비점이 후일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다 보니 선사의 직무상 과실을 문제 삼게 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렇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갑자기 발생하는 로그웨이브(Rogue Wave)와 같은 해상 고유의 위험에 의한 불가항력이나 선박검사 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구조적 결함 같은 잠재하자 등으로 사고가 나는 경우, 불가항력이나 잠재하자처럼 사고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 상법, 해상법 등에서 면책을 적용함에도 선사의 관리 소홀을 문제 삼은 것은 과도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설령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주체의 관리상 문제인지, 당시 기술기준과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중앙해심이 선사의 안전관리 소홀이라고 문제 삼은 좌굴·균열·부식 등의 노후화 현상과 잦은 용접작업, 현측탱크 및 중앙공소에 광범위한 도장 탈락 및 부식, 격창 양하, 횡격벽 지연 수리, 공소탱크로 빌지 배출 등에 대해서도 스스로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어 재결 내용에 상호 모순점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는 책임 소재를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후 선박 설계기준, 검사제도, 안전규정의 개선 방향을 도출하기 위한 문제 제기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침몰 과정 재구성과 생존자 진술의 중요성
포럼에서는 침몰 과정에 대한 시간적 재구성 문제도 주요 논의 대상이 되었다.
발표자들은 위성통신기록, EPIRB(Emergency Position-Indicating Radio Beacon) 신호, 운항기록, VDR(Voyage Data Recorder, 항해자료기록장치), 생존선원의 진술, 기상데이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중앙해심이 생존선원의 진술을 배척하고 SNS 메시지 발신 시간과 EPIRB(비상위치지시용 무선표지설비) 수신 시간만으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시간을 4~5분으로 판단하였으나 발표자는 “생존선원의 진술과 INMARSAT-C(위성통신장치) 신호, EPIRB 신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침몰 시간이 최소 15분에서 최대 35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이하게 침몰 과정을 재구성하였다.
토론에서도 조선 설계 측면에서 5분 침몰설보다는 꽝 하는 굉음이 들리고 이후 전개된 일련의 확인된 증거로 볼 때 그보다 긴 시간의 침몰 진행이 있었을 것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제기하였다.
특히 국제적인 사고조사 관행에서도 생존자의 증언은 사고 당시 상황을 복원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객관적 데이터와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참석자들은 침수 진행 과정과 선박의 부력 유지 시간, 비상대응 과정 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향후 유사 사고 예방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씨맨십(Seamanship)과 비상대응체계가 남긴 교훈
포럼에서는 초대형 광탄운반선(VLOC)의 비상대응 절차와 씨맨십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발표자는 대규모 침수 상황에서의 상황 인식, 선내 의사결정, 비상조치, 퇴선 결정 과정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설명하면서 “IMO는 광석운반선은 침수 시 즉시 퇴선을 권고하고 있고 평소에 5분 이내 구명정을 내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 침수 인지 후 침몰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선장이 왜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서도 광탄운반선의 경우 침수 인지 시 선장이 즉각 엔진을 정지하고 구조신호의 발신함과 동시에 퇴선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스텔라데이지호는 퇴선명령 대신 브릿지로 모이라는 명령이 내려져 결과적으로 많은 선원들이 실종돼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경우까지 선사에게 과실을 묻는 것은 무리이며 법리적으로 선박 침몰과 실종사고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이번 사고는 향후 선원 교육훈련, 위기관리 절차, 비상대응 매뉴얼 개선 등 해양안전정책 전반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해난조사제도와 형사절차의 관계에 대한 성찰 필요
이번 포럼에서는 해양사고조사제도와 형사사법절차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토론자는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은 본질적으로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로서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해 증거력 51% 정도로도 사고 원인의 하나로 인정하지만, 형사법원은 80% 이상의 증명력을 갖춰야 증거로 채택된다며, 따라서 중앙해심의 51%의 확신으로 채택된 사고 원인이 80% 이상의 증거력이 증명되어야 하는 형사법원의 근거로 활용되는 데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였다.
즉 중앙해심과 형사재판은 특정 행위에 대한 과실과 책임을 판단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법적 목적과 기능이 서로 다르고 증거 채택 기준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였다.
해난심판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요인을 폭넓게 검토하는 예방 중심의 제도인 반면,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법칙과 인과관계 입증을 통해 형사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라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동일한 사고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사고조사에서 도출된 원인 분석과 형사책임 판단은 반드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국제적으로도 사고조사와 형사절차를 구분하여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사고조사의 궁극적 목적은 책임 추궁보다 안전 향상과 재발 방지에 있으며, 조사 결과가 안전정책 개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조사기능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대한민국 해난조사체계의 발전 방향
포럼에서는 향후 대한민국 해난조사체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해난조사 전문성 강화, 선박공학·해양기상·운항·인적요인(Human Factors) 전문가 참여 확대, 과학적 증거 기반 조사체계 구축, 데이터 기반 해양안전 분석역량 강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해양 포렌식(Forensic) 체계 확립 등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일부 선진국 사례와 같이 사고조사기능과 안전권고기능을 강화하고, 조사체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발표 및 토론이 있었다.
재결의 존중과 학술적 검증은 병행될 수 있다
참석자들은 중앙해심의 재결이 현행 법체계상 최고 행정재결기관의 판단으로 존중받아야 함과 동시에 대형 해난사고의 특성상 사고 원인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기술적 검증은 재결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구와 토론이 궁극적으로 해양안전 향상에 기여한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는 공동의 과제
한국해사포럼은 이번 포럼이 특정 기관이나 특정 당사자를 비판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통해 대한민국 해양안전과 해난조사제도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전문가 토론의 장이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사고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은 상호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유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공동의 과제이며,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연구와 토론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은 향후 전문가 검토를 거쳐 전문가보고서로 정리하여 대한민국 해양안전정책과 해난조사체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양은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며, 안전은 해양강국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사고에 대한 성찰과 교훈이 대한민국 해양안전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