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405마일 인천~진황도 만리장성 뱃길을 가다
秦皇求仙入海處 비석이 발견돼 진시황 전설 확인 돼
중국 도시가운데 유일하게 황제에 의해 명명된 도시
年 취급 화물량 2억톤에 달하는 등 초대형 항만 발전
진시황제가 불노초를 캐 오라고 하여 첫 도착한 지역으로 인해 이름 붙여졌다는 진황도(秦皇島).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徐福)이 불노초를 찾아 이곳에 도착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에 이어 진황구선입해처(秦皇求仙入海處)라는 비석이 발견되면서 진시황의 전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비석은 명나라 헌종 성화 13년에 진시황의 전설을 기념하여 세운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따라 중국 도시가운데 유일하게 황제에 의해 명명되어 진황도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것.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동쪽의 끝자락에 산해관(山海關)을 비롯한 진황도는 중국의 군사요충지이면서 유구한 역사를 안고 있는 가운데 현재는 연간 취급하는 화물량이 2억톤에 달하는 등 초대형 종합항만으로 기능을 발휘하여 각광을 받고 있다.
고구려 발해 등 우리민족의 역사가 숨쉬고 있기도 한 진황도는 이곳이 그동안 중국 여러지역을 취재해 왔으나 과연 이곳이 중국도시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만큼 깨끗함과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옛날엔 강희 건륭 등 황제들이 여기서 바다를 구경하며 시를 읊었던 곳이다. 현재는 중국 고위층이나 부자들의 별장이 중국도시 가운데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과 만리장성의 전설이 곳곳에 남아있는 진황도는 고구려 등 북방제국들 민족과 한족을 가르는 사실상의 경계선인 산해관이 있어 옛 선조들이 오갔던 역사의 명소이기도 하다.(사진:한국측 합작 대표인 진인해운주식회사 윤수훈(尹秀勳)사장)
베이징에서 동북쪽으로 270Km 거리에 있는 진황도는 동양의 나포리라는 명성을 얻고 있으며 러시아와 유일한 국제항공노선이 운영되고 있고 연산(燕山)대학, 동북(東北)대학 등 7개 대학이 위치해 있다.
2004년 4월 16일 첫 취항 후 주2회 정기항로 운영
욱금향호 여객 348명 정원 228TEU컨화물 선적해
인천 진항도서 월, 금요일과 수, 일요일 정시 출항
○---이러한 진황도를 처음으로 답사하기위해 3월 14일 인천항 오전 10시에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중객화선사협의회 회장단에서 제안하여 각 카페리항로 답사 취재를 하기로 결정한 후 진인해운유한공사(사장 尹秀勳) 측에 의해 첫번째 진항도를 취재하게 된것.
진인해운 정세화 이사(사진)의 안내를 받은 후 카페리에 승선하면서 많은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흥아해운과 중국 진황도 항무국 등이 50대50의 자본비율로 700만$의 자본금에 의해 진인해운유한공사를 2004년 설립해 욱금향호가 매주 2항차 운항중이다.
여객 348명 정원과 228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동시에 싣고 405마일 인천~진황도 항로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95년에 건조된 차이나쉬핑 소속의 욱금향호는 1만2304톤급으로 2004년 4월 16일 첫항로를 개설한 이 후 인천항과 진항도에서 월, 금요일과 수, 일요일 각각 2회에 걸쳐 정시 출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천항에 매주 월요일에 12시에 입항하여 오후 7시에 출항하여 화요일 오후5시에 진항도에 도착한다.
또, 진항도에서 수요일 오후 1시에 출항하여 목요일 12시 인천항에 도착한 후 금요일 12시에 출항하고, 토요일 오전 10시 진황도에 도착하여 일요일 오후 1시에 진황도를 출항하는 일정으로 405마일 23시간 항해를 이어 오고 있다.
이러한 항로에 금~월요일간의 3박4일 일정으로 진인해운 초청에 의해 답사에 나섰다. 진항도를 통해 북경과 백두산 등으로 이어지는 관광 상품이 개발돼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6박7일의 진황도~베이징 베낭여행은 23만원부터 29만9천원의 관광상품과 45만9천원의 6박7일 북경초원 체험행사 투어가 있으며,특히 7박8일의 진황도~북경~백두산 관광코스는 49만9천원에 제공되고 아울러 44만9천원의 글러벌 상거래 체험활동 상품이 있어 이용객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진황도엔 한국기업이 30여개사 진출해 있으나 현지 조달 생산하고 중국 내수로 판매되는 관계로 우리나라로 오가는 화물이 별로없다. 거의가 중국현지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이나 위생도기류, 타이루, 당면, 전자제품 등 반입되는 화물이 대부분이어서 4년여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항로개설 후 고객 맞춤형 서비스개발 등 꾸준하고 다양한 영업전략에 힘입어 최근 화물과 여객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를 흑자의 원년으로 정하고 윤수훈 사장 등 임직원이 의욕에 차 있는 항로다.
인천서 진항도로 가는 항로에서의 욱금향호는 113TEU의 화물과 266명의 승객을 싣고 오후 1시 정시 안전항해에 나섰다. 선내에 도착한 후 방을 배정받고 곧바로 별도에 마련된 오찬에 들어갔다.
오찬은 중국식과 한국식을 혼합한 것으로 맛이 상당히 좋았다. 욱금향호 선내는 여타 카페리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욱금향호는 이튿날(15일) 오전 드디어 진황도항에 도착했다. 날씨가 워낙 좋은 관계로 마치 호수를 달리는 듯한 항해였기에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곧바로 중국식으로 마련된 오찬을 하고 천하제일관을 보기위해 이동했다.
산해관별칭 天下第一館현판 관성동문에
각산, 발해서 山海관의 명칭을 만들었다
외국사신 북경가는 길 통과해야 할 관문
○---중국 하북성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진황도는 250Km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들이 모여있는 장성의 도시라고 한다. 그중 진황도를 대표하는 장성이 산해관이다. 산해관의 별칭인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은 관성 동문이 붙어 있다.
청나라 강희제가 이곳을 지나며 만리장성의 첫번째 관문이라는 시구를 남기어서 이 같은 별칭이 붙었다.
이러한 만리장성의 동부 시발점으로 노용두를 비롯한 유적지가 산해관에 주둔해 있다. 산해라는 이름은 만리장성의 첫번째 산으로 알려지고 있는 각산과 발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해관은 외국 사신들이 베이징으로 들어가기 위해 묵는 장소이며 반드이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관문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척계광, 서달 등 유명한 장군들이 산해관을 지켰고 특히 오삼계가 청조부대를 관내에 이동시켜 이자성 농민들의 봉기를 진압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또 강희 건륭 등 황제들이 이 곳을 찾아와 휴식을 취한 곳으로 경관이 빼어나다.
중국의 4대 전설 중 하나인 맹강녀를 기리는 사당이 위치해 있다.만리장성 축성공사에 얽힌 비극적인 전설의 여주인공이 맹강녀다.장성 건축에 징발된 남편 변기량을 찾아간 맹강녀가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쓰러져 울기 시작하자 10일 만에 성벽이 무너지고 그곳에서 남편의 유골을 찾았다고 한다.
중국 4대전설 맹강녀 사당엔 관광객 줄이어 참배
올림픽 공원과 중국 최대 야생 동물원 등 운영 해
회항시엔 300여명과 200여TEU선적해 만선 운항
○---중국측 총경리 등의 임원들이 만찬을 준비한 곳으로 이동하여 해산물로 마련된 특식으로 식사를 하고 진황도국제호텔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진황도 국제호텔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한 후 올림픽공원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최대규모의 야생동물원을 보고 그 규모에 놀랐다.
오전10시 30분경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 수속을 하는 동안 욱금향호엔 348명 정원에 300여명의 승객과 200여TEU의 컨화물을 싣고 있어 최대 승객과 화물을 선적하게 돼 이번 답사의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중국측 총경리는 취재온 것을 축하기 위해 이 같이 많은 승객과 화물을 선적한 것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승선 후 오찬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역시 23시간 항해에 의해 인천으로 향하는 동안, 역시 파도없이 잔잔한 호수를 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인천항에 도착, 405마일의 항로를 마쳤다.
취재에 협조해 준 분들은 다음과 같다.△윤수훈 진인해운 사장 △정세화 진인해운 이사 △배우성 마케팅 부장 △정진호 진인해운유한공사 감독 △박용철 진황도여행사 한국전선 한국부 대표 △양용 진인해운유한공사 객운부 담당 △하동엽 진인해운 여객영업팀 계장 △송은주 진인해운 여객영업팀 직원 △김광연 진인해운유한공사 재무총감 △배보균 보고트래믹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