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성공한 해적은 중국 여성, 치 카이
5만 명 부하와 1,000척 선박 거느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바다에서 해적이 준동하고 있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그 대상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힘든 생활을 하는 선박 승무원들이라는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1998년 발생한 텐유호와 2000년의 글로벌 마스호 해적피랍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오늘날 해적은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간주하여 어느 나라라도 이들을 나포하고 자국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
해적의 역사는 인류의 해상교통 역사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경우 이미 ‘후한서’와 ‘삼국지’ 등에 해적 기록이 있고 이슬람 성전인 코란에도 ‘배를 빼앗은 사람’에 대한 말이 있으며, 서양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이들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 고대와 중세의 해적
우리 귀에 익은 해적은 바다 건너 이웃나라에 사는 ‘왜구’들이다. 삼국시대 신라에 들어온 왜구를 고구려 군대가 내려와 쳐부수었다는 기록이 광개토대왕 비문에 남아있고, 장보고 대사가 해적들을 소탕했던 사실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최무선이 화약과 화포로 진포에서 왜구를 무찔렀던 역사적 사실이 있고 조선조에서도 세종 때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한 이유가 왜구의 본거지를 치기 위한 것이었다.
서양에서 유명한 해적은 북유럽의 ‘바이킹’이다. 물론 그 이전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해적은 많았다. 당시 고대의 해적은 지중해 일원에서 활동했던 반면 바이킹들은 북유럽, 영국, 지중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린란드와 캐나다까지 건너갔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바이킹은 8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해상으로부터 유럽과 러시아 등에 침입한 게르만족을 말한다. 바이킹은 본래 거주지인 스칸디나비아에 많이 있는 Vik(峽江)에서 온 말로 ‘좁은 강에서 온 사람’이라 뜻이다. 이들의 선박건조 기술은 매우 뛰어났고 의지 또한 강했다.
좁은 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폭포나 장애물이 나오면 배를 땅에 올리고 배 밑에 통나무를 넣어 굴리며 내륙으로 전진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역사상 유래 없이 러시아 내륙 깊숙한 곳까지 침입했다.
중세에 들어와 신대륙에 대한 경쟁 과정에서 영국, 에스파니아, 프랑스 및 네덜란드 등은 식민지 확보와 재물 획득 등에 해적을 공공연히 이용하였다. 세계 4대 해전 가운데 하나인 칼레해전을 이끈 드레이크도 사실상 해적이었다.
○ 해적 여왕, 치 카이
해적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두건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한쪽 눈을 잃고 한손에 칼을 든 험악한 인상의 남자이거나 손목을 잃고 갈고리를 단 해적 선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해적은 바로 19세기 중국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치 카이’였다. 치 카이는 여자임에도 어떤 해적들보다 많은 선박과 남자들을 거느렸다. 또한 은퇴 전까지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었고 빼앗은 물품들을 끝까지 소유했으며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살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빈민 출신인 이 여성은 처음에 고향을 떠나 해적 선장의 첩이 되었다. 그녀는 결혼의 반대급부로 남편 재산을 절반 얻어냈다. 그녀는 1807년 남편이 죽자 전체 선단을 넘겨받았고 그 후 3년 동안 5만 명의 부하와 1,000척 이상의 선단을 거느렸다.
1810년 중국은 치 카이를 공격하기 위해 영국 및 포르투갈 등과 연합함대를 구성하였고 대규모 인명피해를 우려한 중국 황제는 그녀와 사전협상을 벌였다. 치 카이는 정부와 협상 끝에 해적단을 해체한 후 재물만을 가지고 30년을 더 부유하게 살다가 죽었다.
○ 말라카 해협의 현대판 해적
연간 400~500건 발생하는 세계 해적사고 중 약 20%가 말라카 해협과 그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다. 말라카 해협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반도 사이에 형성된 폭이 좁고 긴 바다로 폭 40~100㎞, 길이 900㎞에 달한다.
이곳은 매년 6만 척의 선박이 통과하며 세계 물동량의 25%가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원유를 포함하여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절반이 이곳을 지나는 사실상 ‘해상 실크로드’이다. 이 중요한 길목에서 자주 해적이 출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해상수송을 방해하고 있어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왔다. 더욱이 이들은 소총과 기관총 등 자동화기로 무장하고 있어 비무장 상선은 사실상 방비가 어려운 실정이다.
○ 해적이 자주 습격하는 선박
최근까지 발생한 해상 강도사건의 대상이 되었던 선박의 일반적인 공통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 해당되는 선박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 동남아 해역이나 인도양 등을 운항하는 선박
- 총톤수 2,000~8,000급 정도의 선박
- 저속으로 항해하여 어선이나 소형선박이 접근하기 쉬운 선박
- 낮은 건현(乾舷)으로 항해 중에도 해상 침입이 용이한 선박
- 고가의 단일화물을 실은 선박 (팜유, 알루미늄, 정제유 및 자동차 등)
- 편의치적선이나 다국적 선박으로 여러 나라 승무원이 승선한 선박
- 동일 항로에 정기적으로 취항하여 운항 일정이 노출된 선박 등이다.
○ 해적 예방을 위한 선박의 조치
본선에서 해적 방지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감시강화
- 비상통신체제 확립
- 선박 접근경로 차단
- 소화호스 등 비치
- 대피장소 확보
○ 정부와 국제적 대응조치
우리 정부에서도 해적 예방과 퇴치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방안을 수립 시행하면서 국제적인 협력과 노력에도 힘쓰고 있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해양수산부에 해양안전종합센터(GICOMS) 해양안전종합센터(GICOMS) : General Information Center on Maritime Safety and Security 를 구축하여 모든 외항 국적선의 운항 중 이상 발생시 본부 종합상황실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외교부, 국방부 및 해양수산부와 관련 업·단체 등으로 구성된 해적방지협의회를 추진하고, 국적선사에 대한 간담회와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며 한국선박의 위치추적 및 안전관리 지원시스템(VMS)을 구축하였다.
또한 말라카해협에 해경함정을 파견하여 인접국가와 합동훈련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지역 16개국이 해적방지협력협정(ReCAAP) ReCAAP : Regional Cooperation on Anti-Piracy in Asia, 아시아지역 해적방지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싱가폴에 해적방지센터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같은 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이 있다 하여도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 근무하는 선박 승무원들의 노력과 역할이다. 선박에서 본래 수행해야 하는 업무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불필요한 해상강도 예방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보다 우리 승무원들 자신의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위한 것이기에 조금의 소홀함도 허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