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해양수산부에서는 제1회 장보고 대상 시상식을 가졌다. 이에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천인봉 사무처장이 말하는 제1회 장보고 대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장보고 대상’은 해상경영의 영웅인 장보고 대사의 업적과 뜻을 기려 바다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인재들을 찾아 그 성과를 널리 알리고 공유하기 위해 만든 상이다.
작년 초부터 내일신문과 재단법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가 상 제정을 추진했다.
해양수산부가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었고 행자부와 협의 끝에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해양수산부장관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작년 9월 27일 ‘제1회 장보고 대상’ 제정과 시상에 대한 공고를 내고 10월까지 해양수산부 각 실·국과 산하기관 단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후보자 추천을 받았다.
11월 5일까지 추천받은 후보자 100여명에 대한 자료를 취합했고 12월 21일 이들 가운데 서류심사를 통과한 60여명을 대상으로 예비심사를 치렀다.
예심에는 심사에 공정성과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내일신문 장보고재단 해양수산부에서 각 1명씩, 그리고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전문가 2명이 예심위원으로 참여했다.
예심 결과 해양 산업·문화·과학기술 3개 분야에서 각각 5명씩 15명을 엄선했고 올해 2월 1일 이들을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최종 심사에는 내일신문과 장보고재단, 해양수산부 관계자와 과학계, 경제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덕망이 높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다음은 제1회 장보고 대상을 받은 김종식 완도군수, 이재학, 양상용씨의 수상소감이다.
▲ 김종식 완도군수
제1회 장보고대상에 우리 완도군이 받게 된 것을 6만 군민과 함께 축하하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바다의 중요성과 장보고대사의 해양개척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남다른 관심과 성원으로 상을 제정해주신 내일신문사와 해양수산부 그리고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완도군은 장보고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해 동아시아 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고 활발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했던 해상무역 중심지였습니다. 장보고대사의 위업을 재조명하고 기리기 위해 청해진 본영이 설치됐던 완도군을 중심으로 ‘장보고선양사업’이 일찍부터 활발히 전개돼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장도 유적 정비·복원을 비롯해 장보고 동상과 청해진기념관 건립사업 등이 한창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 2005년에는 드라마 ‘해신’이 방영돼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장보고대사의 위업과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또 군민들은 해마다 개최되는 ‘장보고 축제’에 참여해서 장보고 대사의 개척정신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완도군 역시 장보고 대사의 개척정신을 계승해 해양바이오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완도군은 장보고대사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이 본영을 설치하고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을 준비하였던 애국 충절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장보고 대사의 해양 개척정신과 이순신 장군의 해양수호정신을 드높이기 위한 세계해양영웅공원을 조성해 국민적 해양사상을 고취시키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세계적 해양관광 명소로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세계해양영웅공원은 완도군이 국내 해양관광 1번지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민족 해양사의 2대 영웅인 장보고 대사와 이순신 장군의 유적과 발자취가 살아 숨쉬는 유일한 장소인 완도에 세계해양영웅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해양영웅공원이 조성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첫회를 맞이한 장보고대상이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양을 개척해 나가는 숨은 인재를 찾는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 이재학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정말로 수상을 하셔야 할 분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수상자 선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해양학자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준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대학 1학년 말, 반은 호기심으로 생소하기만 하던 해양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마도로스 되려고?’라는 질문도 받았던 그 때가 이제 30년도 한참 지났습니다. 오늘의 수상을 대학원과 유학생활을 거쳐 학문이라는 직업으로 한길 우물을 파고 있는데 대한 칭찬으로 듣고 싶습니다.
2002년 11월 해양연구선 ‘온누리호’에 승선해 동태평양 적도를 따라 동진하며 해양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페루 리마 외항인 까야오에 입항했을 때 적도에 가깝고 여름인데도 사람들이 두툼한 옷차림이라 놀랐습니다. 6개월 후 ‘온누리호’는 서태평양 적도상을 따라 해양조사를 마치고 파퓨아뉴기니의 마당이라는 항구에 입항했습니다. 이곳 바닷가 원주민들은 윗옷을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같은 적도상인데 삶의 모습이 판이함은 문화가 달라서도 종족이 달라서도 아닙니다. 바다가 조절하는 기후가 달라서입니다. 동태평양은 바다 표층 수온이 섭씨 18도로 우리나라 동해남부 11월 수온이고 서태평양은 30도 이상이었습니다. 조금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바다는 지구상 기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서 풀어놓았습니다.
왜 해양학자인가? 선구자적인 해양물리학자 Hennry Stommel이 1989년 미국해양학회 창립총회에서 이 물음에 답했습니다. 바다는 아직도 예측하는 것보다 더 많은 발견이 존재하다고 했습니다. 20년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요즈음 이공계 기피현상을 접하면서 늘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합니다. 해양학의 경제적 실용성이 아주 느릴 뿐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강대국이라 칭하는 국가들은 해양학의 질적 수준이 높습니다. 막강한 해군력으로 바다를 지키기도 하지만 해양학으로 아주 먼 바다까지 소유하기도 합니다. 장보고가 보여주었던 그러한 위상을 우리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아주 못난 후손이겠지요. 과학으로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수상의 기쁨을 어머님과 아내와 아이들, 주위에서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더하여 전합니다.
▲ 양상용
한반도 5000년 역사에 있어 해상물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해상왕 장보고를 기념해 주시는 장보고대상의 1회 수상자로 선정되어 무척이나 영광스럽습니다.
장보고 대상이라는 큰 상을, 더욱이 첫 번째 주는 상을 제가 받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으며 대한민국 해상개발을 위해 노력하시는 여러 훌륭한 분들께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이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 3대 국책사업의 하나인 부산신항만 민자부두의 성공적인 수행이라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는 부산신항만 건설에 밤낮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해양수산부, 부산신항만 주식회사 그리고 저와 끝까지 함께 해 준 현장 직원과 근로자 분들과 저에게 이렇게 큰 사업을 믿고 맡겨주신 회사 관계자 분들께 이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밤낮으로 현장을 지켰던 저를 지금까지 믿고 따라준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저는 1999년 10월 부산신항 준설토 투기장 가호안 2공구를 시작으로 2006년 12월 부산민자부두현장까지 사업진행의 총책임자로 200만평에 달하는 바다가 동북아 물류중심이 될 허브포트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업초기 모두들 불가능한 일이라 믿었던 덤프트럭 320만대에 해당하는 매립 채취원을 확보했지만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피땀 흘려 쌓아온 부산신항만의 기초가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힘든 시련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비롯하여 부산신항을 거쳐간 수많은 기술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기에 2006년 부산신항 3선석 조기개장과 2007년 6선석 개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 남은 삶 중에 이처럼 거대한 사업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다시 할 수 있다면 제 1회 장보고대상이라는 큰 영광을 안겨주신 국민 여러분과 장보고기념사업회 관계자분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코자 더 많은 땀과 노력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해양산업 개발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