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청년을 잃고 있다… 청년 해기사 이탈, 구조적 원인과 대안은
경력 단절 아닌 경력 출발점이 되려면 바뀌어야 할 것들
제2회 선원의 날을 맞아 6월 17일 부산 한국무역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 및 정책토론회에서는 청년 해기사들의 승선 기피 현상을 둘러싼 구체적인 원인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 행사는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단과 재단법인 바다의 품이 공동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운협회, 한국해운조합, 한국해기사협회 등이 후원했다. 청년 해기 인력의 유입과 정착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정책적 대응 방안을 함께 조망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1부 토크 콘서트에는 외항, 내항, 크루즈, LNG선 등 다양한 선종과 경력을 지닌 청년 해기사들이 패널로 나서 승선을 그만두게 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한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승선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니발 크루즈 소속 구남제 항해사는 “해외 선사는 3개월 근무 후 3개월 휴가라는 1:1 로테이션이 정착돼 있어 장기 승선에 따른 피로와 가족 단절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며, 국내에서는 4개월 승선 2개월 휴가 제도가 서류상 규정에만 머무르고 실제로는 9개월 이상 장기 승선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KMC해운 김경동 1기사는 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휴가, 급여, 근무 안정성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병역특례 제도를 통해 입직한 해기사가 복무 종료 후 대부분 이직하는 현실에 대해 “복무 기간 동안에도 승선 경력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 안정성과 복지 기반이 마련돼야 장기 근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세훈 부산항 도선사는 “항해사는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승선 경험이 육상 경력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며, “외국은 항만, 교육기관, 선박관리회사 등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지만, 국내는 그 길이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Seapeak 소속 이동현 선장은 해외 선사의 복지와 근무 환경을 국내 사례와 비교하며, 보다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 선사에서는 3개월씩 교대 근무를 하며, 장기적으로 한 선박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해 업무 연속성과 조직 애착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해기사도 능력이 있다면 외국 선사에서는 차별 없이 일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자신이 근무 중인 선박의 브리지 인원 중 절반이 여성일 정도”라며 “하지만 국내는 여성 해기사가 전체의 1%에도 못 미치고, 제도적 기반과 현장 인식 모두 여전히 뒤처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한 “해외 선사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도 자동 진급되는 것이 아니라, 승선 중 평가와 별도의 진급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다음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며, “명확한 기준과 체계가 마련돼 있어 준비가 가능하다는 점이 국내와 다른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HMM 소속 김이슬 1항사는 여성 해기사로서 겪은 실질적 어려움을 공유하며 현장 인식과 제도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역량을 의심받거나, 매번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선박 내에서는 여성 해기사를 동등한 동료가 아닌 ‘특별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직무를 지속하기 위해 단순히 개인적 의지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며, “승선 경험이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커리어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선상에서의 역할 수행이 ‘일시적인 선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전문 경력’으로 인식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 해기사 지원 정책과 문화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신 인프라 역시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위성망 불량으로 인해 장기간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사례가 공유되었고, Starlink를 도입한 외국 선박에서는 영상 통화는 물론 원격 정비, 온라인 학위 과정까지 가능한 점이 비교됐다. 패널들은 “통신 복지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업무 효율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2부 정책토론에서는 정부·업계·노동계의 관계자가 참석해 현장의 문제 인식에 제도적 해법을 어떻게 접목할지 논의가 이뤄졌다.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주체들이 청년 인력 이탈의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지속가능한 승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역할 분담과 실천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철중 한국해운협회 상무는 “해기 인력의 장기 승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승선 환경을 단순한 근무지가 아닌 '주거 공간'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2023년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유급 휴가 확대, 상병 보상 제도 도입, 인터넷 통신 인프라 개선 등을 추진해 왔으며, 올해 하반기부터 필수 선대에 위성 통신 장비를 우선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도 개선뿐 아니라 기업 문화 전반의 변화가 병행돼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묵 해양수산부 과장은 “청년 해기 인력 확보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있으며, 승선 인센티브 확대와 함께 커리어 연계 체계 개선, 가정 친화적 제도 마련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승선 경력을 육상 경력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해양직업교육 강화와 해운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후속 진로 설계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청년 해기사 당사자들의 현실적 의견을 수렴해 정책 설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박영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본부장은 내항과 외항 모두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재 구조만으로는 청년 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휴가, 통신, 복지의 격차를 청년들이 가장 예민하게 체감하고 있다”며,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기본권 수준의 노동환경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자발적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학범 한국해운조합 실장은 내항선의 특수성과 열악한 현실을 지적하며 “국내 내항선의 70% 이상이 100톤 미만의 노후 선박이며, 복지나 안전 기준도 외항선 대비 현저히 낮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와 업계의 공동 투자로 선박 리모델링과 선내 복지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하며, 내항선 종사자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내항선 승선 경험이 육상 직무와도 연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정현 한국해기사협회 상무는 지속가능한 승선 환경 조성을 위해 상호 이해와 타협 기반의 협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기사 개인의 희생이나 기업의 일방적 요구로는 인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며,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적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경력 개발과 복지 보장, 생활 안정이 동시에 보장되는 다층적 제도 틀이 마련되어야 청년들이 해운업에 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승선이 경력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휴가·통신·복지·세제·커리어 연계 전반에 걸친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여성과 외국인 해기사의 활용, 병역특례 해기사의 장기근속 유도, 승선 후 경력전환 등 다층적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행사는 청년 해기사의 현실과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직접 연결지으며, 현장의 경험과 정책 대응이 동시에 모색된 자리였다. 발표된 현안과 과제가 정책과 업계의 실질적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